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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모양으로 생긴 배내골과 배가 드나든 선리 선창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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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칼럼

배 모양으로 생긴 배내골과 배가 드나든 선리 선창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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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배내골은 배 모양의 행주형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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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문화관광연구소 소장 관광경영학 박사 심상도

 

원동면 배내골의 고점마을, 대리, 선리, 장선리 등은 깊은 골짜기에 길쭉하게 이어져 풍수지리학적으로 배 모양으로 생겼다고 하여 행주형이라고 한다. 배내골을 하나의 배로 가정할 때 배내골의 두 진입로 중 해발고도가 낮은 영포리에서 들어오는 배태고개를 뱃머리로 보았으며, 약간 더 높은 배내고개를 배의 뒷부분인 선미로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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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내골을 감싸고 있는 영남알프스 남서부, 남동부 능선은 각각 밀양 얼음골이나 양산 통도사에서 보면 거의 직벽이라 양쪽 산줄기를 배의 측면으로 간주했다. 옛날에는 행주형 지세에서 배가 떠나면 마을이 망한다 하여 풍수 비보(裨補) 차원에서 인근에 지명으로나마 포구를 만들었다. 배태고개 아래 마을인 원동면 영포리(泳浦里), 내포리(內浦里), 함포리(含浦里) 등이 포구와 연관 있는 지명이다. 지명에 포(浦)가 들어가면 포구(浦口)였을 가능성이 높다. 옛날에는 낙동강의 지류인 원동천을 통해 배가 들어올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상류인 내포리, 영포리까지도 하천따라 배가 드나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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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하회마을은 3면이 강으로 둘러싸여 짐을 싣고 떠나가는 배의 모양인 행주형이다. 하회(河回)마을은 조선시대 영남의 4대 길지였고, 오늘날에는 경주 양동마을과 더불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곳이다. 이곳은 미국 부시 대통령 부자와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방문하기도 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전통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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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회마을은 임진왜란 때 선조를 수행하여 국난을 극복하고, 나라를 구할 위대한 인물인 이순신 장군의 인물 됨됨이를 일찌감치 알아보고 파격적으로 발탁하게 한 서애 류성룡(1542~1607)이 태어난 곳이다. 류성룡의 9대조 류난옥은 자손 대대로 뿌리를 내리고 살만한 땅을 구하기 위하여 지관의 도움을 받아 이곳에 터를 정하고 3대에 걸쳐 적선을 한 후 서애의 6대조 류종해 공이 이곳에 집을 짓고 살기 시작했다. 그 후 600여 년을 이어오면서 수많은 인재를 배출하였다.

 

하회마을은 산태극, 수태극, 태극형(太極形, 산과 물이 태극 모양) 또는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 물위에 떠 있는 연꽃 모양)이다. 백두대간 태백산맥에서 뻗어온 지맥이 화산(花山, 327m)을 이루고 낙동정맥에서 뻗어온 지맥이 남산과 원지산, 부용대를 이루면서 서로 만난 곳을 낙동강물이 S자로 감싸주면서 돌아 마을이름을 물돌이동 하회(河回)라고 지었다.

 

2. 배내골의 선리 선창가

 

양산시 원동면 선리 마을에 실제로 배가 드나들던 선창(船倉) 마을이 있었다. 배내골에는 하천이 있는데, 흔히 배내천이라 하지만 공식 이름은 단장천이고 마을 곳곳에 단장천이라는 안내판이 붙어 있다. 옛날에 심심산골인 배내골에 배가 사람과 짐을 싣고 드나들었다고 하면 양산 시민들은 언뜻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물론 현재는 밀양댐으로 인해 물길이 완전히 막혔지만 예전에는 배가 다닐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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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내골에서 흘러내리는 단장천은 밀양으로 연결되어 단장면, 산외면을 거쳐 밀양시 내일동에서 훨씬 큰 강인 밀양강과 이어진다. 밀양강은 삼랑진읍 삼랑리에서 낙동강과 합류한다. ‘삼랑진(三浪津)’이라는 명칭 자체는 삼랑진읍에 있는 삼랑리에서 따온 것이다. 삼랑리는 석 삼(三), 물결 랑(浪), 나루 진(津)으로 세 개의 물결이 합해지는 곳이다. 삼랑리는 옛날에 낙동강 조창(漕倉)이 있었던 유서 깊은 곳이다. 낙동강과 밀양강이 만나고, 거기에 큰 조차(潮差)로 인해 부산 인근의 남해 바닷물도 역류해와 3개의 물결이 있다는 데서 삼랑리라는 지명이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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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내골 선리 마을에 있는 ‘선리 선창가’ 안내판에 배내골에서 밀양강을 거쳐 낙동강으로 연결되는 물류 흐름이 잘 나타나 있다. 시 한 수가 서두를 장식하고 있다. “버드나무 꺾어드리며 눈물로 그대를 이별한 곳/ 기약 없는 그대 기다려 망부석이 될지언정/ 오늘도 물안개를 맞으며 이곳에 서있습니다.” 필자가 방문한 11월 25일 오후에 마침 가랑비가 흩날리고 있어 물안개라는 말이 실감이 났다. 집으로 오는 길에 에덴밸리 리조트 정상에는 실제로 안개가 자욱하였다. 선리 선창가 안내판에 적혀있는 시와 실제 기상이 맞아떨어진 것은 필자의 행운이라 할 수 있다. 역사 유적지를 찾아 열심히 현장을 다니다 보면 이런 운이 찾아오는 것 같다.

 

배내골 선리 마을의 선창가에서 주민들이 생산한 농산물을 배에 싣고, 단장천을 따라 밀양의 단장면 소재지에 팔기도 하고, 단장천에서 더 내려가 밀양강을 만나 밀양의 각 지역에도 판매하고, 더 내려가 낙동강에 도달하여 삼랑진, 김해 등지에도 팔았다. 옛날에 먹고살기 위해 나룻배를 타고 선리 선창가를 출발하여 단장천을 따라 내려가 단장면 장터 등에 농특산물을 팔고, 돌아올 때는 생활필수품을 사오는 고된 여정을 이어나갔다. 선창가는 배내골 주민들의 삶의 애환이 서린 역사적인 현장이다. 선창이 있었기에 이곳에는 뱃사공을 위한 주막도 형성되었을 것이다.

 

3. 일제의 풍수 탄압과 지명의 강제 변경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인들이 배내골이 풍수지리적으로 배 모양의 행주형이고, 산천이 수려하기 때문에 큰 인물이 탄생할 것을 우려하여 지명을 강제로 바꿨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양산의 다방 마을 역시 일제 강점기 때 한자 지명이 바뀐 사례가 있다.

 

양산시 다방동은 차나무가 많은 동네여서 옛날부터 마을 이름을 다방(茶房)이라고 하였다. 차(茶)와 연관된 지명은 일제강점기 때인 1914년 많을 다(多) 꽃다울 방(芳)으로 마을 이름을 변경했다. 꽃처럼 아름다움이 넘치는 마을도 좋은 이름이지만 차나무가 자생하는 마을이라는 상징성을 되살릴 필요가 있다. 한글로 발음할 때는 여전히 똑같지만 의미는 완전히 달라진다.

 

선리에 있는 배내골 홍보관 입구에 가면 개울 옆에 배가 한 척이 떠 있다. 농림부의 ‘배내골 농촌마을 종합개발사업’을 할 때 ‘선리 선창가’를 스토리텔링하여 마을의 유래를 설명하는 안내판, 돛단배 조형물을 설치하였다. 그리고 소공원을 조성하고 실내 체육관을 건립하였다. 원동면 영포리에는 원동매화축제의 기반시설인 쌍포매실다목적광장에 센터, 주차장을 조성하였다. 이 사업 덕분에 원동매화 축제는 전국적으로 유명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2007년 당시 배내허브랜드의 정석진 대표가 추진위원장을 맡아서 양산 최초로 농림부 공모사업에 도전하여 따낸 농촌개발 사업이었다. 지금은 농림부의 일반농산어촌 개발사업으로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 양산의 읍면 지역에서 실시되는 농촌개발사업은 현재 그 권역의 역사와 문화를 스토리텔링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초창기에 옛날 배가 드나들던 선창의 유래를 밝히고 배 조형물을 세운 것은 획기적인 일이었다.

 

일본 사람들은 한민족을 정신적으로 지배하기 위하여 풍수지리설을 악용하였다. 위대한 인물이 탄생하지 못하도록 명산의 정상에 지기를 억제하기 위해 쇠말뚝을 박기도 하였다. 일제는 쇠말뚝을 박아서 지맥을 끊는 풍수 침략을 자행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혹자는 이런 일이 없었다고 주장하지만 일제의 악랄성은 역사, 문화 전반에 걸쳐 교묘하게 진행되었다. 한민족의 정기를 말살하기 위하여 우리나라 사람들이 나라꽃으로 사랑한 무궁화나무를 전국 곳곳에서 뽑아 불태우기도 하였다. 종교 탄압과 아울러 신사참배를 강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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