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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도 박사의 화요 칼럼/소설가 김정한 선생의 수라도와 화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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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칼럼

심상도 박사의 화요 칼럼/소설가 김정한 선생의 수라도와 화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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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문화관광연구소 소장 관광경영학 박사 심상도

 

1. 소설가 김정한

 

요산(樂山) 김정한 선생은 1908년 음력 9월 26일 부산시 금정구 남산동 663의 2번지에서 태어났다. 고향에서 한학을 배우다 범어사 부설 사립 명정학교를 거쳐 동래고보를 나와 일본 와세다 대학 부속 제일고등학교 문과를 다녔다. 김정한 선생이 증조부가 세운 서당을 다니며 한학을 배우다가 12세에 들어간 명정학교는 범어사에서 세운 사립학교였다. 범어사와 명정학교는 만해 한용운과도 관련이 있다. 만해의 불교활동의 중심지였고 ‘불교대전’을 간행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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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의 제자인 김법린이 범어사에서 스님이 되어 명정학교 교사로 있으면서 3ㆍ1운동에도 관여하다가 투옥되는데, 김정한은 1919년에 이 학교에 입학했고 3.1운동 당시 상급생들이 범어사와 범어사 입구를 오가며 만세를 부를 때 김정한도 함께 했다는 기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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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산은 1931년 조선유학생 학우회에서 펴낸 ‘학지광’의 편집을 맡았다. 1936년 일제강점기의 궁핍한 농촌의 현실과 친일파 승려들의 잔혹함을 그린 ‘사하촌’이 조선일보에 당선되어 등단했다. 그 후 ‘항진기’, ‘기로’ 등의 작품을 발표하면서 ‘민중을 선동하는 요주의 작가’로 지목되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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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33세)에 ‘낙일홍’, ‘추산당과 곁사람들’, ‘월광한’ 등을 발표하였으며, 3월 교원직을 사직하고 동아일보 동래지국을 인수하여 동래로 이사하여 지국 일에 전념하던 중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피검되었다. 8월 동아일보가 폐간되자 이 시기부터 붓을 꺾고, 경남도청 상공과 산하 면포조합 서기로 취직하여 해방될 때까지 근무하였다.

 

1947년(40세) 부산중학교 교사로 취임, 1949년(42세) 부산대학교에 출강하고, 경남 중등교사 자격 심사위원으로 위촉, 1950년(43세) 부산대학교 조교수로 발령받았다. 1959년(52세) 제3회 부산시 문화상(문학상)을 수상하였다. 부산일보 논설 집필, 칼럼 및 수필 등 다수 발표, 경상남도 지명 제정위원에 위촉되었다.

 

1960년(53세) 5월부터 부산대학교 문리대 문학부장으로서 학장 취임, 1961년(54세) 5.16혁명으로 6월 학교에서 물러나 부산일보 상임 논설위원이 되었다. 1963년(56세) 9월부터 부산대학교에 출강, 1965년(59세) 부산대학교 전임강사로 복직하여 11월 조교수로 승진하였다. 

 

1974년 자유실천문인협의회의 고문과 1987년 그 후신인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초대 의장을 맡았다. 한국문학상,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은관문화훈장 등을 수상했다.

 

남해에서 교편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가졌던 농민 문학에 대한 선생의 관심은 「사하촌」 이후 민족 문학으로 확장되었다. 일제 강점기의 항일 의지가 광복 후 독재 정권 하에서 민주 의지로 승화되었다.

 

2. 화제리를 배경으로 한 수라도

 

김정한 선생의 대표작으로 ‘모래톱 이야기’, ‘수라도’, ‘사하촌’, ‘인간단지’, ‘제3 병동’ 등이 있다. 김정한은 1932년에 단편 ‘그물‘을 문학건설에 발표한 뒤, 1936년에 ’사하촌(寺下村)‘이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됨으로써 등단하였지만 1940년대 이후에는 거의 절필 상태로 지냈다. 25년 동안 창작을 중단하였다가 환갑을 앞둔 나이(59세)에 ’모래톱 이야기‘를 내놓아,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였다. 이후 수라도’, ‘인간단지’, ‘산거족’ 등 빛나는 작품들을 연이어 내놓았다.

 

‘모래톱 이야기’는 '땅의 문학'의 결정체라 할 수 있는 작품이다. 낙동강 하류의 외진 곳을 무대로 민중의 편에서 이 땅의 부조리함을 고발했다. 1인칭 소설로 되어 있으며 ‘사하촌’ 이후 26년 만의 문단 복귀 작품이었다. 1969년 중편소설 ‘수라도’로 제6회 한국문학상과 부산시 문화상을 받았으며, 1971년 11월 작품 ‘산거족’으로 제3회 대한민국 문화예술상을 수상하였다. 그해 12월에 16편의 역작을 수록한 제2창작집 ‘인간단지(人間團地)’를 발간하였다.

 

‘수라도(修羅道)’는 김정한이 지은 중편소설로 1969년 6월 『월간문학』 8호에 발표되었고, 1975년 삼중당에서 간행한 같은 제목의 단편집에 수록되었다. 가야 부인이라는 한 개인의 생애를 중심으로, 낙동강을 배경으로 한 허씨 문중의 가계와 오봉산 밑 촌락의 변화를 통하여 한국 근대사의 변천을 보여준 작품이다.

 

소설 제목 ‘수라도’는 불교 신화에서의 아수라를 의미한다. 불교 전승에서 아수라는 수미산(須彌山) 북쪽에 살면서 제석천(帝釋天)과 싸움을 영원히 계속하는 존재로 등장한다. 팔부신중(八部神衆) 가운데 하나인 불교의 수호신이다. 보통 세 개의 얼굴과 여섯 개의 팔을 지닌 삼면육비(三面六臂)의 모습으로 묘사되지만, 여덟 개나 네 개의 팔을 지닌 삼면팔비(三面八臂)나 삼면사비(三面四臂)의 모습으로 묘사되는 경우도 있다.

소설 ‘수라도’는 아수라와 같은 시대적 혼란을 헤쳐가는 가야부인을 통해 유교와 불교의 조화, 신분을 뛰어넘은 인간애, 남녀평등 실천 등을 구현하고자 했던 작품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가야 부인은 김해의 명문가에서 역시 양반 가문인 양산 화제리 허씨 집안으로 시집을 왔다. 그러나 시아버지 오봉 선생의 대쪽 같은 성품이 일제의 억압적 상황과 맞지 않아 집안은 온갖 시련을 겪어야 했다. 시할아버지 허진사는 한일 합방 직후 만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하다 서간도에서 유골로 돌아오고, 시동생 밀양 양반은 3.1 운동 때 일제에 죽임을 당하고, 오봉 선생은 한산도 사건이라는 애국지사 박해 사건에 걸려 갖은 고초를 겪는다.

 

일본에 건너가 대학을 다니던 아들은 학병을 피해 숨어다녀야 했고, 양딸 구실을 하던 옥이마저 정신대에 끌려갈 뻔 한다. 가야 부인은 기울어져 가는 집안 살림을 도맡는다. 가야부인은 우연히 산기슭에서 발견한 돌미륵을 모실 미륵당을 지어 의지할 데 없는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위무한다. 시아버지 오봉 선생은 출옥 후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난다. 

 

이듬해 광복은 되었지만 허씨 문중의 형편은 그 이전보다 나아지지 않았고, 오히려 친일 행각을 일삼은 집들은 더욱 번창하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가야 부인은 막내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임종을 맞는다.

 

3. 김정한 선생과 양산의 인연

 

김정한 선생은 양산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1932년 양산(梁山) 농민봉기사건에 관련하여 피검되어 학업을 중단하였다. 양산과 관련된 소설은 ‘수라도’, ‘메깃들’(현대문학.1959.7), ‘사밧재’(현대문학.1971.4) 등이 있다.

 

김정한은 1927년(20세) 3월에 경남 양산군 하서면 화제리 풍양인 조희원 씨의 장녀 조분금(趙分今)과 결혼하였다. 1996년 11월 28일에 89세를 일기로 타계하여 부산 남천성당에서 사회장을 치르고, 양산의 어곡동 신불산 공원묘지에 안장되었다. 

 

부인 조분금 여사가 2004년 11월 20일에 서울 강남병원에서 노환으로 향년 97세로 별세하여 남편 곁에 합장하였다. 조분금 여사는 1908년 원동면 화제리에서 태어났는데, 1950년대 요산이 정치적 탄압을 받을 때 몸소 행상에 나서 살림을 꾸리는 등 헌신적 내조를 했다.

 

김정한 선생은 처가가 있는 화제리를 배경으로 ‘수라도’를 집필하였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지명들은 모두가 실제 이름과 일치할 뿐만 아니라 마을의 위치마저도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하였다. 처가 마을인 화제리와 주변 마을을 문학 현장의 주 무대로 삼았다. 오봉 선생댁은 명언마을에 있고 대밭각단은 죽전(竹田)마을에 위치한다. 냉거랑다리는 화제교이고 태고나루터는 토교마을 근처에 있다.

 

소설 속에 나오는 지명을 머리에 떠올리며 답사를 하면 멋진 문학기행을 할 수 있다. 대밭각단과 명언마을에는 요산 문학 안내비가 서있어 쉽게 찾을 수 있다. 냉거랑(화제천) 건너 오봉 선생의 유일한 글 친구인 양접장이 사는 대밭각단(죽전마을), 가야부인의 시아버지가 살았다는 명언마을을 둘러볼 때 요산의 수라도 소설을 손에 들고 가면 더욱 의미가 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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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부산에 있는 요산문학관에서 김정한 선생의 소설집을 구입한 바 있다. 대나무가 여전히 남아 있는 죽전마을은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인체에 해로운 석면 슬레이트 지붕을 이고 있는 옛날 집이 아직도 남아 있다. 명언마을에는 ‘2005년 범죄없는 마을’이라는 커다란 돌 안내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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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당산나무를 지나 마을 안길로 들어가면 마을회관이 나온다. 수라도를 주제로 한 문학기행을 주요 관광상품으로 개발하면 인기가 있을 것이다.


대밭각단 들머리에는 솔밭이 있다. 소나무 사이로 듬성듬성 작은 무덤들이 있는데, ‘수라도’에서 괴질에 비명으로 죽은 고명딸의 시신이 있던 곳이다. 소설 속 지명은 거의 현재의 지명과 겹친다. 가야부인이 모신 미륵당인 용화사는 다음 기회에 소개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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