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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독립운동 선양사업 지원 조례 전부개정 토론회 개최/심상도 박사 스토리텔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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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telling

경상남도 독립운동 선양사업 지원 조례 전부개정 토론회 개최/심상도 박사 스토리텔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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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토론회 소개

경상남도의회 교육위원회 표병호위원장(양산3, 더불어민주당)은 2016년도에 관련 조례만 제정하고 미서훈 독립운동가 발굴에 대해 소극적으로 대처하는 보훈정책에 대해,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하여 적극적인 보훈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표위원장은「경상남도 독립운동 선양사업 지원 조례」의 전부개정을 준비하면서 사전에 관련 전문가의 의견을 듣기 위해 10월 21(월) 오후 3시부터 4시 반까지 경남도 의회 1층 대회실에서 토론회를 개최하였다.
 
 
 
이날 토론회는 류해숙 전문위원이 맡았으며, 표병호 위원장의 인사 말씀에 이어 주제발표가 이어졌다. 추경화 진주시 향토사학자의 발제 1 ‘미발굴 항일독립투사 선양사업의 경과 및 이상한 포상제도’, 발제 2 송원대학교 국방경찰학과 백수원 교수의 ‘국가유공자(독립지사) 피해보상제도의 적정성 검토’(장사리 학도의용군 사례를 중심으로), 사례발표는 이경우 미서훈 독립운동가 유가족의 ‘백농 이규홍 선생 업적 및 유가족의 어려움’에 대해 고충을 이야기하였다.

이규홍 독립투사 손자 이경우 씨
 
 
 
 
 
 
 
토론회는 창원대학교 남재우 교수가 좌장을 맡았으며, 토론자는 발제자 2명, 경남도의회 표병호 교육위원장, 동남문화관광연구소 심상도 소장, 경남도 이삼희 행정국장, 경남꿈키움중학교 이운하 교장 등이 참석하여 현행 법제도 하에서의 미발굴 독립지사 선양의 어려움과 우수사례를 소개하고 향후 경남도의 보훈정책이 나아가야 하는 방향에 대해 종합토론 및 질의 응답이 있었다.

2. 발제 1 추경화 진주시 향토사학자 :
미 발굴 항일독립투사 선양사업의 경과 및 이상한 포상제도

호석(胡昔) 추경화(秋慶和) 현 진주문화원 향토사연구실장은 독도사랑본부 의병대장, 충효실천운동본부 대표, 대학교에서 도서관학과 졸업, 저서 12권, 항일투사 1천 3백여 명 발굴하여 그중에 정부포상 성사에 성공한 경우가 290여 명에 달한다고 한다. 공적비, 추모비 건립한 곳은 6곳(하동 진주 고성 산청 사천 진양 등)에 달한다.

광주학생운동(1929. 11~1932년) 사이에 시위를 주도하고 퇴학 처분된 학생들은 구제할 대상이라고 하였다. 국무총리가 지난 2018년 11월 퇴학자 구제를 발표했으나 실무선에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정학처분 경고 등을 받은 학생은 구제가 어렵겠지만 퇴학당하여 취업 불가 및 출세를 하지 못하고 항상 감시대상으로 행동의 제약을 받은 이들을 구제해 정부포상을 실시해야 한다.

부산 동래고 80여명 퇴학, 마산 용마고 50여명 퇴학, 진주고 96명 퇴학(확인), 경남과학기술대(진주농업학교) 58명 퇴학(확인), 진주여고 29명 퇴학(확인) 등이 퇴학 처분되었다고 한다. 이들은 일제 경찰의 감시로 취업도 못하고, 각종 사업을 하고자 할 때 허가를 받지 못하여 불이익을 당했다.

여성들의 독립운동은 재대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는데, 반드시 발굴하여 공적을 기려야 한다. 경남보상부인회 소속으로 진주의 이진사의 부실 문국향은 사립학교 봉양학교를 설립할 때 앞장선 철성 이씨의 부인이다.
 
 
 
 
 
진주 기생들도 경남보상부인회를 통해 의연금을 납부했는데, 그 명단은 다음과 같다. 국향 20원, 김소사 20원, 도홍 20원, 필향 20원, 봉란 10원, 계향 8원, 향심 금연 6원씩, 옥연 5원, 봉희 4원, 부용, 매옥, 옥엽, 진옥, 오소사 등도 각 2원씩 냈다. 총 142원을 수합했다(대한매일신보 1907년 3월 28일). 진주기생조합에서 보상금을 모아 송금하게 되는데 전 참봉 정경칠의 부인도 동참했다는 기록이 있다.

똑같은 독립운동을 하고 투옥되었는데, 서훈 등급에 차별이 있어 문제다. 의령군 상정면(화정면)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이 대표적이다. 1919년 3월 20일 밤 덕교리 입구에서 조균구, 조두환, 김구현, 조균수, 김응현 박용주 등이 모여 시위를 시작하고, 체포되었다. 다 같이 투쟁하고 같은 날 재판을 받고 같은 날 석방되었는데 한명은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고 다른 4명은 한 등급 낮은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

지리산 일대에서 의병장으로 활동한 이상수, 유명국, 손기혁 등은 더욱더 이상한 포상 제도의 희생양이 되었다. 유명국 의병장은 산청 하동 그리고 지리산 일원에서 4~5백 명의 부하를 거느린 의병장이었다. 그의 부하였던 이상수, 동료 의병장 손기혁 등이 서로 다른 등급의 훈장을 받았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

행사 진행은 경남도의회 류해숙 교육전문위원이 맡았다.
 
 
경남도 광복회장 인사말
 
 
발제자 추경화 진주 향토사학자
 
지금까지 정부부처에서 자료를 찾아 정부포상을 성사시킨 건수보다 개인이나 민간 단체에서 성사시킨 건수가 많으니 참으로 기가 막힌 일이다. 역대 지방보훈지청장이 말하기를 지방보훈지청은 발굴 기구도 없고 발굴할 직원도 없다는 것이다.

경기도 광명시에 사는 이명호 선생은 최소한 2천 여명의 독립지사를 포상케 했다는 것이다. 의병문학을 전공한 이태룡 선생은 인천대학교에 근무하면서 4백 여명을 발굴해 포상 신청을 하고 결과를 기다린다는 것이다 (20019년 3월 현재). 하동군의 정재상은 하동군과 힘을 합해 전수조사를 실시하고 그동안 주로 의병 활약상을 조사해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고 말했다.

친일파들이 국립묘지에 안장되었고(서울 국립 현충원 7위, 대전 현충원 4명이 문제), 최근에 정 문제가 발생했는데 김구 선생의 최측근이 밀정이었고 김구 선생의 암살을 주도했으나 실패했으며 김좌진 장군의 부하 중에도 밀정이 있었고 안중근 의사와 이등박문(이토)을 저격할 때 함께 피체되어 3년형이 언도되었던 우덕순도 밀정으로 발표되었다. 친일파요 밀정 1호는 김인승이라고 한다. 동소문 파출소와 이천파출소를 습격한 이수흥 선생이 믿었던 6촌 이준승도 고자로 기록되었다. KBS가 조사 발표한 정은 모두 895명이다.

마산출신 의병은 아주 미약하지만 의병은 전라도와 경상도의 지리산 가야산 일원에서 활발했다. 특별히 양산 출신 서병희 의병장이 활발했는데 그의 부하 김용이(1889~1917년) 선생은 양산 밀양 지리산 일원에서 유명국 이상수 손기혁 등과 활동하다 딸이 태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마산 자택을 찾았다가 일경에 발각되자 바닷가로 도주하였고 격투 끝에 창포(창원 거제) 바다 물에 빠져 죽으니 순국이다. 직계 손은 없고 조카 김상명 선생이 백부의 명예회복을 위해 동분서주 뛰고 있으나 지금까지 미포상이다.

국가보훈처가 지난 10여 년간 발굴 조사단을 조직해 활동 했으나 國內用(국내용)이 아니라 만주 중국 미주 등지에서 활 동한 이들을 찾아 힘을 쓰고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발표해 왔다. 국내 독립지사는 보훈처 발굴단이 하지 않고 누구보고 하라는 말씀인가?

3. 발제 2 추경화 송원대학교 국방경찰학과 백수원 교수 :
국가유공자(독립지사) 피해보상제도의 적정성 검토(장사리 학도의용군 사례를 심으로)
 
 
 
송원대 국방경찰학과 백수원 교수 발표
 
법제처가 발표하고 있는 1959년 2월 18일 통령령 제1425호로 공포된 병역법 시행령 제7조에 따르자면 ‘학도의용군’이라 함은 1950년 6월 29일 이후 ‘학도의용군’ (재일동포 학도의용군을 포함한다)으로 육・해・공군 또는 유엔군에 예속되어 1951년 2월 28일 해산할 때까지 근무한 자로서, 전투에 참가하고 그 증명이 있는 자를 말한다. 단 상(戰傷)의로 인하여 간에 나온 자까지를 그 범주에 포함한다. 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렇게 참유공자로 인정이 된 학도병 또는 그 유가족은 국가유공자 등의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제4조 제1항 제10호 가목에 따라 국가유공자로 예우 및 지원을 받을 수 있다. 또한 특별 규정으로서 동법 제4조 제1항 제9호에 따라 6.25참전 재일학도의용군인 또한 국가유공자법에 따른 예우와 지원을 받게 된다.

지원내용은 국가유공자법에 따라 보훈급여금, 교육지원, 취업지원, 의료지원, 그 밖의 지원(대 부, 양로, 요양, 양육, 수송시설 이용, 고궁 등의 이용, 주택의 우선 공급, 생업지원) 이 되고 있다. 한 참유공자법에 따라 참전명예수당 지급, 의료지원, 양로지원, 요양지원, 국립묘지 안장 또는 장제보조비 지원, 호국 정신 계승 사업 등을 하는 법인 또는 단체에 보조 지원이 되고 있어서 학도의용군의 정신 고취와 명예를 드높일 수 있는 단체 수립 및 지원이 가능하다.

학도의용군의 국가배상 책임을 검토하자면 전시상황이라는 특수성을 먼저 검증하여야 할 것이다. 과연 전시 작전 수행을 하여 필요한 경우 희생 당한 군인에 한 국가 배상 책임을 인정할 수 있을 것인지가 첫 번째 문제이고, 학도의용군의 자발적 참여가 이러한 희생을 정당화시킬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는지의 문제가 남아있다.

장사상륙작은 학도병들의 큰 희생을 불러왔다. 인천상륙작의 성공을 위해 적들을 교란시키기 위한 작이었는데, 당시 상황의 엄함을 생각하면 이러한 교란작전이 필요하였고, 또 결론으로 성공적인 임무수행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학도병들이 상륙함 문산호에 탑승하여 장사해안에 도착할 즈음 태풍으로 인하여 배가 좌 된 상황이 벌어졌고, 많은 인원이 수장되었다. 심지어 가까스로 배에서 빠져나온 학 도병들은 북한 정사단과 싸워야 했기 때문에 그 희생은 매우 큰 상황이었다. 최근 영화로 만들어졌다.

당시 해난구조선을 파견하여 학도병을 구조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태풍과 북한군 앞에서 뱃머리를 돌리는 일도 있었다. 이에 139명이 전사하고, 92명이 부상당하고 행방불명이 다수를 차지하는 참사가 일어났지만 결국 이 작으로 인해 북한군의 전력이 분산되는 효과를 낳아 인천상륙작에 큰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이 세간에 드러나게 되었다.

결국 학도의용군의 경우에도 예컨대, 장사상륙작전과 같은 국가의 전시 상황에서 학도의용군을 이용한 전체 상륙작전을 성공으로 이끈 행위에 관하여 비인간적이었다는 인간 고뇌가 담긴다면 이는 별도의 법률을 통해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해볼 여지도 배제할 수 없다. 즉, 손해배상의 관점을 일부 반영하여 국가의 책임설의 입장 또는 절충설 가운데 고의・과실에 의한 손해발생에 대해 국가가 책임을 지는 경우를 가정하여 보상 성격이 내포될 수 있을 것이다.

군번도 없이 전투 임무를 보조하던 이들 학도의용군의 경우에는 연령 특수성으로 인해 아직도 생존에 계시는 분들에게 보훈정책의 변화를 체감하실 수 있도록 다각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할 것이며, 유족들에게도 보상을 넘어선 리프레쉬 정책 등을 적극 도입하여야 할 것이다.

4. 사례 발표 : 백농 이규홍 선생 업적 및 유가족의 어려움 - 이경우 미서훈 독립운동가 유가족

백농 이규홍 조부님께서는 1919년 4월 23일 윤현진씨와 함께 상해로 망명하여 임시정부수립에 참여하여 윤현진 씨는 재무차장, 이규홍 조부님은 청년단 출판부장,두 분이 상해로 같이 가실 때 30만 원의 자금을 가져갔습니다. 윤현진 씨 재무차장 근무 3년 후 폐결핵으로 갑자기 사망하여 상해임시정부회의에서 이규홍 조부님을 재무총장으로 임명하였습니다.

총장은 장관인데 1925년 외무총장, 내무총장 세 부서의 장관을 하셨고 1926년 12월에서 1930년 11월 이후까지 백범 김구 선생 국무령 일 때 국무원, 지금의 국무총리까지 하셨고, 1926. 12. 15 임시의정원 부의장 이렇게 높은 직책으로 근무하며 인생을 다 바쳐 독립운동을 하셨습니다. 윤현진, 김철 두 분처럼 폐결핵으로 46세에 사망하시고 집안이 멸망하여 손자인 제가 겨우 힘들게 살고 있습니다.

이규 독립투사의 손자인 이경우 씨가 사례발표를 하고 있다.
 
이종문 부친과 형님 사망 후 2003년부터 제가 자료를 준비해서 제출하였으나 귀국 시부터 사망 시까지의 행적불분명 이라는 이유로 서훈받지 못했습니다.

2011년 외가집 조카 위덕대교수 박훈탁에게 자료를 부탁해서 국가보훈처에 제출하였는데, 가촌 토지주식회사 환영자동차합자회사 사업을 한 것이 친일행적으로 인정되어 독립유공자 서훈을 할 수 없다는 답장을 받고, 민족문제연구소에 문의를 하였더니 이규홍 이분의 조상님들 조선시대 관직에 근무하셨고 변절 행위를 한 것이 없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할머니께서 대나무밭에 묻어둔 항아리에 논밭을 팔아서 숨겨 둔 자금을 상해임정 첩보원이 오면 전달하셨습니다. 1935년 첩보원이 이규홍님께서 폐결핵에 걸려 곧 사망할거 같으니 집으로 모셔 오시는게 좋겠다고 하는 연락을 받고 할머니께서 증조부님을 모시고 상해로 가셔서 이규홍 조부님을 모셔왔습니다.

페결핵 전염병으로 구속하지 않고 자택에 4곳의 건물이 있어서 일본경찰 2명이 말타고 총칼차고 와서 가택연금 상태로 있었다고 합니다. 제 부친께서 동래고등학교 다닐 때 학생들과 만세운동으로 구속직전까지 와서 할머니께서 일본 와세다 유학을 보내어 졸업 후 일본의 현대문명을 보고 사업을 하고 싶어서 외삼촌 지영진과 함께 조부님방으로 가서 사업설명을 하니까 그럼 사업을 해서 비자금을 마련해서 상해임정으로 보내라고 해서 구포근산 병원으로 수십번 자금을 보낸 심부름을 했다는 외사촌 형님의 증언을 들었습니다.

이러한 사실과 증언사실을 제출하였으나 국가보훈처에서는 답변이 없습니다. 부친께서 지영진 외삼촌과 사업을 하실 때 등기소에 조부님 성함을 올린 것은 재산상속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가촌토지주식회사 환영자동차합자회사 등기부에 조부님 이름을 올린거였습니다.

진정한 독립운동가 집안은 멸망하였다는 게 사실입니다. 법률로 따지면 이규홍 조부님 사례는 너무 억울한 현실입니다.

5. 표병호 경남도의회 교육위원장의 독립유공자 서훈에 관한 지원

표병호 교육위원장은 독립유공자에 대한 자료의 체계적인 수집, 자료 보존, 법제도의 문제점 분석, 독립유공자 서훈 문제 대정부 건의, 불합리한 보훈처 서훈 규정의 개정 요구를 하겠다고 약속하였다. 앞으로 국가의 보훈정책은 바뀌어야 하고 지방정부에 맡겨주면 더 잘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미서훈 독립투사를 위해 최선을 다하여 좋은 성과를 올리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표병호 교육위원장은 지난 18일 제367회 임시회 제2차 본회의 5분 자유발언 등을 통해 경남도의 보훈정책은 매우 소극적이고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음을 지적하고 경상남도가 적극적인 보훈정책으로 전환해 줄 것을 촉구한 바 있다. 표병호 위원장의 발언 내용을 소개한다.

“본 의원 지역구인 양산에는 백농 이규홍(白農 李圭洪)이라는 분이 계십니다. 이 분은 자신의 가산(家産)을 희생하여 독립운동 자금을 임시정부에 제공하고 지금의 기획재정부 장관에 해당하는 임시정부 재무총장까지 역임하신 항일지사입니다. 백농 선생님과 같이 독립운동의 행적이 뚜렷한데도 사후 행적이 불분명하거나 수형(受刑)기록이 없다는 이유로 서훈을 받지 못하고 있는 도내 독립운동가가 상당수에 이른다고 관련 전문가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현실이 이러한데도, 경남도의 보훈정책은 이미 국가유공자로 지정받은“서훈 독립운동가”에 대하여 사후관리 차원에서 단지 예산지원만을 하고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까움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국가보훈기본법」 제5조에는 국가와 함께 지방자치단체도 보훈과 관련한 정책을 수립하여야 한다고 그 책무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미서훈 독립운동가 발굴문제 역시 국가 차원의 문제만이 아니라 우리 도의 문제이기도 한 것입니다.“

표병호 위원장은 지난 3월에는 도내 학교 내 일제 잔재를 전수조사하여 청산한 것을 요구하여 TF 팀이 구성되는 등 과거의 불행했던 역사를 청산하고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하였다.

표위원장은 “독립운동 선양사업 지원 조례 전부개정은 물론 향후 경상남도의 보훈정책의 변화에 계속적인 관심을 가지면서 도내 미서훈 독립운동가 발굴 및 독립유공자 지정을 위해 최선의 노력할 것이다”라고 약속했다.

6. 토론 내용

심상도 소장은 상해임시정부에서 재무총장, 외교총장, 내무총장, 의정원 부의장(국회부의장), 국무령을 지낸 거물 독립투사 이규홍 선생의 독립유공자 미서훈의 문제점에 대해 언급하였다.

손자인 이경우 씨를 돕기 위해 많은 새로운 자료를 발굴하여 지난 4월 30일에 보훈처에 제출하였으나 보훈처의 형식적인 답변 공문을 받았던 일, 양산시의회에서 만장일치로 보훈처에 서훈을 촉구하는 건의문 채택을 부탁하여 성사시켰으나 역시 의례적인 답변 공문을 받았던 점을 얘기하였다. 그리고 표병호 교육위원장에게 이규홍 선생의 서훈을 위해 협조를 당부한 과정을 소개하였다.

심상도 소장은 이규홍 선생이 상해에서 16년 동안 독립투쟁을 하다가 법정 전염병인 폐결핵에 감염되어 목숨이 위독하자 귀국하여 일제 경찰의 감시하에 가택 연금당하면서 양산읍내에서 의사와 간호사가 왕진하며 치료하였음을 밝혔다. 폐결핵은 그 당시 치료약이 개발되지 않아 많은 사람이 죽었으며, 전염병 환자를 강제수용하고 격리하는 일제의 위생 경찰제도를 이야기하였다.

감시와 건강악화로 생계유지를 위해 단지 명의만 빌려주어 아들과 사돈이 사업을 하였으며, 수익은 비밀리에 상해로 보냈으므로 서훈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수천석지기의 재산과 몸을 바쳐 독립투쟁을 하였고, 4년 남짓 투병하다가 46세에 운명했을 때 많은 주민들이 문상하였으며, 문상객은 일제 경찰에게 탄압당했으므로 독립투사가 분명하다고 힘주어 강조하였다. 독립유공자 서훈을 촉구하였다.

이삼희 행정국장은 보훈처의 관계자가 토론장에 나왔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유감을 표명하였다. 법적인 한계로 예산지원은 못 해도 외로운 유족에게 힘을 보태주고 연중 두세 번의 안부 인사, 연말연시 인사 등을 통해 예우를 하겠다고 약속하였다. 경남꿈키움중학교 이운하 교장은 학생들이 독립운동가 바로 알기, 유적지 답사 활동을 하며 나라 사랑정신을 배우도록 교육하고 있다고 하며 광복회 회원, 교수, 향토사학자 등에게 자료 요청을 했다. 청중들의 질의 시간에 이시일 시인은 후손에 대한 보상 못지않게 명예회복이 중요하다고 건의하였다.

7. 종합 결론

보훈처에는 독립유공자 발굴을 위한 직원이 거의 없으며, 국내 유공자 발굴은 소극적으로 임하며, 독립유공자 서훈은 전적으로 유가족의 책임으로 미루고, 유족들이 애써 자료를 모아서 제출해야만 심사를 하고 있어 문제다.

표병호 경남도 교육위원장
토론자, 사진 촬영 전이섭 소장,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동남문화관광연구소 소장 심상도
 
 
 
토론회 청중에게 질문기회가 돌아와 이시일 시인이 질문
 
표병호 교육위원장, 이규홍 독립투사 손자 이경우 씨와 함께
 
토론회 참가자 기념촬영
 
이경우 씨, 표병호 교육위원장, 심상도
 
김구 선생이 쓴 그 유명한 ‘백범일지’에도 이규홍 선생의 활동상이 나온다. 도산 안창호 선생과 주고받은 편지에도 독립투쟁 활동, 독립자금 모집 내용이 나온다.

아들이 하는 사업에 명의만 빌려준 것이 사업한 것은 무조건 친일이라는 보훈처의 어처구니 없는 단순 논리 때문에 여태까지 서훈을 받지 못하여 손자인 이경우 씨는 힘들게 생활하고 있다. 사업하여 번 돈은 첩보원을 통해 비밀리에 상해로 보냈다.

이경우 씨는 월남전 참전용사로 고엽제 후유증에 시달려 건강도 좋지 않은 상태다.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케이스가 바로 이규홍 선생의 일가족의 경우다.

이규홍 독립투사는 수천석지기의 부자였는데, 전 재산을 독립투쟁을 위해 상해임정에 보냈으며, 끝내는 폐결핵에 감염되어 귀국 4년만인 46세의 젊은 나이에 타계하였다. 전재산과 자신의 생명까지 바쳐 투쟁한 결과 대한민국은 공적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파 명단에도 오르지 않았고, 일본 외무성 자료를 조회해 봐도 요시찰 인물로 제거 대상으로 올라 있고, 변절 기록은 없었다.

이규홍 선생의 귀국 후 행적이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서훈을 해주지 않고 있다. 1919년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계기로 정부는 독립유공자의 대대적 발굴을 추진하고 있다. 주요 개선 내용 중에 독립운동 이후 행적이 불분명 하더라도 결격사유가 확인되지 않는 경우에는 포상하기로 한 내용이 있다. 이규홍 선생은 바로 이 케이스에 해당되며 하루빨리 서훈되기를 기원하는 바이다.

이런 토론회를 주선하고, 경상남도 독립운동 선양사업 지원 조례 개정을 준비 중인 표병호 경남도 교육위원장의 노고에 깊은 감사를 드리는 바이다. 양산에서 먼 창원 경남도의회 토론회에 응원차 참석하신 영남삿갓 이시일 시인, 성봉경 수집가, 문화교육연구소 전 전이섭 소장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자 한다.

<동남문화관광연구소 소장, 양산숲길보전회 회장, 관광경영학 박사 심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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