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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도 박사의"한국을 대표하는 전통정원인 양산의 우규동 별서의 두 신선의 바둑 대국 제3탄"스토리텔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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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양산뉴스

심상도 박사의"한국을 대표하는 전통정원인 양산의 우규동 별서의 두 신선의 바둑 대국 제3탄"스토리텔링

1. 돌에 새겨진 귀중한 바둑판.

소한정에는 돌 바둑판이 남아 있다. 돌에 새긴 바둑판은 가로 19줄, 세로 19줄, 361로가 많이 지워져 희미해졌지만 아직도 옛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감나무 밑에 자리 잡고 있는데, 바닥의 암반에 붙어 있어 100년이 넘은 연륜의 세월을 묵묵히 견디고 있다. 재단법인 한국기원의 직원이 최근 서울에서 내려와 소한정의 돌 바둑판을 사진 찍어갔다고 우규동의 증손자인 우종신 전 농협상무가 필자에게 알려주었다. 소중한 문화유산인 바둑판이 현재 자리에 그대로 영원히 보존되어야 하겠다.

바둑은 우리 조상들이 여유와 풍류를 즐기는데 필수 요소였다. 왕, 관리, 선비, 기생 등 풍류가객들이 서로 바둑을 통해서 함께 어울리기도 했다. 전설 속의 상산사호에 보면 신선들이 바둑을 두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옛날 한 나무꾼이 나무를 하러 산속 깊이 들어갔다가 우연히 동굴을 발견했다. 동굴 안으로 들어가니 길이 점점 넓어지고 훤해지면서 눈앞에 두 백발노인이 바둑을 두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나무꾼은 무심코 서서 바둑 두는 것을 구경하다가 문득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 옆에 세워 둔 도끼를 집으려 했는데 도끼자루가 바싹 썩어 집을 수가 없었다.
 
 
이상하게 생각하면서 마을로 내려와 보니 마을의 모습은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한 노인을 만나 자기 이름을 말하자, 노인은 “그분은 저의 증조부 어른이십니다.”라고 대답하더라는 것이다.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말이 여기에서 유래되었다.
 

2. 영남삿갓 이시일 시인과 영수증 수집가 성봉경 씨의 신선 대국 재현

2019년 10월 9일 한글날을 맞이하여 오후 두시에 우규동 별서에 남아 있는 돌 바둑판에서 신선들이 바둑을 두는 모습을 재현하는 자리를 마련하였다. 총감독, 연출 담당은 동남문화관광연구소 심상도 소장이었다. 오래 전에 필자는 이시일 시인과 우규동 별서에서 신선들이 바둑두는 모습을 연출해보자고 의논하였다.
 
 
여름에는 날씨도 덥고 모기가 극성을 부리고, 가을이 되니 비가 계속 내리고 태풍 타파, 미탁이 거듭 내습하여 날짜가 계속 미뤄졌다. 날씨가 호전되었고, 세종대왕이 백성들이 누구나 쉽게 글을 쓸 수 있도록 한글을 만들어 역사적 의미가 깊은 한글날을 택해 행사를 진행하였다.
 
 
우리의 고유한 전통을 살리기 위해 두 대국자는 한복차림으로 하기로 결정하였다. 영남삿갓 이시일 시인은 한복에 삿갓을 쓰고, 도사 지팡이를 짚는 평소의 모습을 그대로 하면 자연스러운데, 바둑 대국 상대를 구하는 것이 문제였다. 성봉경 수집가에게 계획을 얘기하니 쉽게 승낙을 하여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주제를 선정하였다.
 
 
바둑 알은 이시일 시인 제공, 도끼 역시 이시일 시인이 평소 집에서 사용하는 걸 가져왔다. 성봉경 수집가가 입은 하얀 한복도 이시일 시인이 제공하였으며, 밀짚모자도 이시일 시인이 더울 때 스던 것이다. 소품과 복장이 준비되고 날씨도 받쳐주어 촬영을 하게 되었다. 우규동 별서의 주인공인 우규동 금부도사의 증손자 우종신 양산농협 전 상무에게 연락했더니 다른 일정 때문에 올 수 없다고 하여 아쉬웠다.
 

3. 바둑 시

서경덕 (1489~1546) 조선 전기 학자

沿溪一路入靑林 연계일로입청립
林下禪居晝亦陰 임하선거주역음
觸石泉絃千曲咽 촉석천현천곡인
依天山簇萬重深 의천산족만중심
淸歡直欲朝連夜 청환직욕조연야
勝會應難後継今 승회응난후계금
數局閒碁談笑裏 수국한기담소리
不知雲日已西沈 부지운일기서침

시냇가 오솔길로 접어드니 푸른 숲이 나오고
선방은 우거진 숲 속에 있어 낮에도 침침하구나
시냇물 돌에 부딪치며 千曲을 뽑으니 목 메여하고
하늘 향한 화살촉 같은 산들 수없이 겹치며 깊어지네.
 

아침부터 밤까지 청아한 즐거움을 직접 맛보니
이런 훌륭한 모임 후세인이 이어가긴 힘 드리라
바둑 몇 판 두고 한가히 얘기하고, 웃고, 흉금을 터놓으니
구름 속에 해가 이미 서쪽으로 기운 줄도 몰랐구나
정포 (1309~1345) 고려 후기 문신

仙女千年兩臉紅 선녀천년양검홍
人間俯伂鬢如蓬 인간부패빈여봉
奕碁欲賭長生術 혁기욕도장생술
惆悵相看是書中 추창상간시서중

선녀는 천년을 살아도 두 볼이 발그레 이뿐데
인간은 누웠다 엎어지니 귀밑털이 쑥대로다
선녀와 내기바둑을 둬 장생술을 얻고 싶은데
그림 속 글을 대하니 슬프고 심란해진다
정도전 (1342~1398) 고려 말, 조선 전기 문신
 

檻外花枝轉午陰 함외화지전오음
閒毃玉子逞芳心 한고옥자영방심
輸來莫賭黃金百 수래모도황금백
一笑還應直百金 일소환응직백금

오후 그림자가 난간 밖 꽃가지로 옮겨가고
한가히 바둑돌 두드리며 젊은 혈기 달래는데
저물녁에 황금 백 냥 들고 와 내기바둑 두자하네
그대 환한 웃음으로 충분하니 그 돈 갖고 가게나
 
 
온 몸이 장독으로 쑤시고 아프다. 사헌부에 끌려가 곤장 80대를 맞았으니 멀쩡하다면 그도 이상할 터. 지난 보름 동안은 그저 누워만 있었다. 살아있는 것만도 다행이다. 다행이 곤장을 때리는 형리가 부친의 오랜 친구였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이미 송장이 되었을 것이다. 부친은 이번 일로 파직을 당했다. 젊은 혈기가 앞질러 저지른 일이지만 결코 후회는 없다. 오히려 가슴에 뜨거운 피가 더욱 절절 끊어 올랐다.
 
 
이제 겨우 일어나 앉게 되니 바둑이 두고 싶어졌다. 이른 아침부터 바둑판 옆에 끼고 오로삼매경에 빠져 있으니 마음이 편안하다. 세상 모든 일이 나완 무관하다. 하늘은 푸르고, 바람은 부는 듯 마는 듯, 이따금 대밭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청량하다.
 
 
김삿갓은 바둑에 대해서 배우게 되자 바둑에 대한 다음과 같은 시를 읊었다.

검은 돌 흰 돌이 진을 치고 에워싸며
잡아먹고 버리기로 승부가 결정난다.
그 옛날 사호들은 바둑으로 세상 잊고
신선놀음 하다 보니 도끼 자루 썩었다네.
 
 
縱橫黑白陣如圍 (종횡흑백진여위)
勝敗專由取捨機 (승패전유취사기)
四皓閑枰忘世坐 (사호한평망세좌)
三淸仙局爛柯歸 (삼청선국란가귀)

꾀를 써서 요석 잡아 유리하게 돌아가니
잘못 썼다 물러 달라 손을 휘휘 내젓는다
한나절에 승부 나고 다시 한판 시작하니
돌소리는 쩡쩡하나 석양이 저물었네.

죽은 연리지 나무 앞에서
 
 
詭謀偶獲擡頭點 (궤모우획대두점)
誤着還收擧手揮 (호착환수거수휘)
半日輸영更挑戰 (반일수영갱도전)
丁丁然響到斜輝 (정정연향도사휘)

4. 바둑의 유래

바둑의 유래는 매우 오래되었다. 문자가 생기기 이전인 4,300여 년 전에 발생했다고 중국 사료에 전해지나 확실한 고증은 없다. 옛날 하(夏)나라 걸왕(桀王)이 석주에게 명하여 만들었다고 하고, 요(堯) 임금과 순(舜) 임금이 아들의 지혜를 계발시키려고 바둑을 가르쳤다는 설화도 있다. 또 바둑판의 구조가 『주역』의 이치와 서로 통하므로 바둑의 기원이 『주역』의 발생과 때를 같이했으리라는 설도 있다.

칠성각에 절하며...
 
 
바둑이라는 말은 한자 ‘위기(圍碁)’와 순수한 우리말인 바돌, 바독, 바둑 등으로 불려왔는데, 광복 후부터 ‘바둑’으로 통일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바둑이 우리나라에 전래된 시기 역시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바둑사는 삼국시대부터 기록에 나온다.
 
 
『구당서(舊唐書)』 「고구려전」에 “위기(圍碁, 바둑), 투호(投壺, 화살 던져 넣기) 등의 놀이를 좋아하고, 축국(蹴鞠)에도 능하다”는 대목이 있다. 또 『후한서(後漢書)』에는 “백제의 풍속은 말 타고 활 쏘는 것을 중히 여기며, 역사 서적도 사랑한다. 그리고 바둑 두는 것을 숭상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광복 이전까지 순장(順丈)바둑이라는 재래식 바둑을 두고 있었다. 순장바둑은 어느 때부터 두기 시작했는지는 문헌으로 기록된 것이 없어서 알 수가 없다. 순장바둑은 광복과 함께 자취를 감추었다. 현행 바둑은 일본식 바둑이다. 순장바둑은 흑돌과 백돌을 대칭적으로 각기 8개씩 도합 16개의 돌을 놓고 두기 시작한다.
 
 
그 다음부터 두는 방법이나 사활은 현행 바둑과 같으나, 끝내기에서 남아 있는 공배가 집이 될 수가 있어서 끝까지 한 점씩 놓아야 한다. 또 바둑이 끝나서 집을 지을 때도 서로 접촉하는 경계선상의 돌 이외는 전부 집어내 버리고 남은 공간을 자기 집으로 간주한다. 즉, 잡은 상대방 돌도 상대방 집을 메우는 것이 아니고 바둑판 밖으로 집어내 버리는 것이다.
 
 
바둑은 중국에서 만들어져 우리나라를 거쳐 일본에 전해졌다. 현대 바둑은 일본이 최신 정석, 이론을 개발하여 앞서나가는 선진국이었다. 한국은 조남철 선생이 일본 유학을 통해 선진 일본의 바둑 이론을 배워 귀국 후 한국의 1인자가 되었다. 중국은 등소평의 개혁 개방 이후 바둑을 장려하였다.
 
 
한동안 일본이 세계를 주름잡았고, 한국은 조남철 9단 이후 조치훈 9단이 일본에 유학하여 일본 바둑계를 제패하였다. 바둑황제 조훈현 9단은 일본에 유학하여 세고에 겐사쿠(瀨越憲作) 9단의 제자가 되었다. 조훈현 9단은 병역을 필하기 위하여 귀국하였고, 세고에 9단은 제자를 따나보낸 허전함과 외로움 때문에 자살하는 비극이 있었다. 조훈현 9단은 바둑 천재로서 스승의 기대에 부응하여 한국바둑의 황제로 군림하였다.
 
 
이후 조훈현 9단은 역시 바둑 천재인 이창호의 기재를 일찍 간파하고 내제자로 집에 받아들였다. 이창호 9단은 각고의 노력 끝에 스승을 이기고 독립하여 스승의 집에서 나와 독립하여 한국과 세계를 제패하였다. 이창호 9단은 돌부처라는 별명이 말하듯이 말수가 적고 겸손하였으며, 올바른 인품을 갖추어 한국, 중국, 일본 바둑 팬들의 존경을 받았다.
 
 
현재 세계 바둑 판도는 중국이 제패하고 있는 형국이다. 한동안 세계를 호령하던 한국이 2인자 역할을 하고 있다.근대, 현대 바둑의 선구자 일본은 현재 침체기에 들어 있다. 바둑은 두뇌발달에 좋은 자극을 주기 때문에 어린이 때부터 바둑을 가르치면 머리가 좋아진다.
 
 
필자는 어릴 때부터 바둑을 좋아하여 초등학교 시절 열심히 바둑을 책을 통해 독학을 하였다. 중학교 때는 고향인 삼척군 북평(현재 동해시)에서 어른들을 물리치고 제일 바둑을 잘 두게 되었다. 한 때는 프로 기사를 꿈꾸었으나 포기하고 공부를 하게 되었다.

우규동 별서 주인과 방문객이 아쉬운 작별 인사를 하며...

5. 바둑은 마인드 스포츠

아시안 게임 최초로 바둑이 체스, 장기와 함께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의 정식 경기 종목으로 채택되었다. 한국 대표팀이 본 종목에 걸린 금메달 3개를 모두 획득하자 다음 인천대회에는 채택되지 못했다. 금메달 획득으로 군 면제, 승단 혜택이 있었다.

잘 가라고 손을 흔들며 배웅... 우규동 별서의 돌에 이런 글귀가 새겨져 있어...
 
국제마인드 스포츠 협회(IMSA)가 주최하는 월드마스터스챔피언십 2019'에 한국 기사들이 출전하였다. 한국 대표팀이 국제마인드스포츠 바둑 부문에서 중국을 제치고 3연속 종합우승을 차지했다
2019년 5월 14일부터 18일까지 중국 허베이(河北)성 헝수이(衡水)시 아가일(Argyle) 호텔에서 열린 IMSA(국제 마인드 스포츠 협회) 월드마스터스챔피언십 2019 바둑 부문에서 한국은 여자 단체전과 혼성페어전에서 금메달을, 남자단체전에서 은메달을 획득하며 금메달 2개, 은메달 1개로 2위 중국(금메달 1개, 은메달 1개)을 제치고 종합우승을 달성했다. 여자단체전에서 최정 9단과 오유진 6단이 금메달, 남자단체전에서 박정환・신진서・이지현 9단이 은메달을 획득하였다. 신진서 9단, 최정 9단 팀은 혼성페어전 2연패를 달성하였다.

영남삿갓 이시일 시인이 한참 가다가 뒤돌아보며 주인에게 손을 흔들며...
 
'월드마스터스챔피언십 2019'는 중국에서 열려 바둑, 체스, 브리지, 체커, 중국 장기 등 5개 종목 17개 부문에서 메달 경쟁이 펼쳐졌다. 바둑 부문에는 한국, 중국, 일본, 대만 4개국과 유럽대표, 북미대표 등 6개 팀이 참가해 남녀 단체전 및 혼성 페어전에서 경쟁하였다.

별서 주인과 작별하며 정처없이 떠나는 영남삿 이시일 시인
 
바둑과 장기도 스포츠라고 보는 이들은 ‘몸을 어떻게, 얼마나 쓰느냐에 따라 스포츠인지 아닌지 가르는 건 잘못’이라고 한다. 마인드 스포츠도 기존 스포츠에 못지않게 선수들의 체력과 정신력이 승패에 큰 영향을 미친다. 축구, 야구 같은 신체적 스포츠만 스포츠라고 주장하는 건 너무 좁은 견해라고 주장한다.
 
 
국제적으로 의견은 엇갈린다. 어떤 종목이 스포츠냐 아니냐를 판별하는 데 있어 권위를 인정받는 스포츠 조직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국제경기연맹총연합회(SportAccord)'가 있다. IOC는 마인드 스포츠를 아직 정식 종목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땀을 흘리지 않는다고 스포츠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반면 스포츠계의 유엔 같은 '국제경기연맹총연합회'는 마인드 스포츠도 스포츠라고 보고 있다. 대표적으로 국제바둑연맹(IGF)은 마인드 스포츠로 인정받아 여기에 소속돼 있다.
 
 
아시안게임에서 체스가 2006, 2010년, 바둑과 장기는 2010년, 브리지는 2018년 종목으로 채택돼 경기가 열렸다. 2022년 항저우 아시안 게임에서는 체스, 바둑, 장기가 종목에 포함될 예정이다. 항저우 아시안 게임에서는 정작 전통적인 스포츠로 꼽히는 야구가 빠지게 되었다.우리나라 한국바둑협회는 대한체육회(KSC)에 소속된 59개 정회원 단체 가운데 하나다. 국가가 인정하는 스포츠단체인 대한체육회에 소속돼 있으니 이미 우리나라는 바둑을 스포츠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인공지능(AI) 알파고가 이세돌을 꺾어서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프로 바둑 기사도 AI를 더 이상 이기지 못하는 세상이 되었으며 오히려 기사들이 AI와 대국하며 바둑을 배우고 있는 실정이다.
 

6. 우규동 별서의 복원, 보전, 관리 대책

우규동 별서는 1910년 조성된 이후 거의 110년이 흐르는 동안 변화가 많았다. 특히 1950년에 김일성의 불법 남침으로 시작된 6.25 전쟁 때문에 커다란 피해를 보았다. 그 당시 신불산, 선암산 산골 마을에 준동하는 빨치산을 고립시키기 위하여 세터 마을을 불태우고 주민들을 소개시키는 일이 있었다. 6.25 전쟁 때 지리산의 빨치산이 유명하였는데, 양산의 배내골과 연결된 신불산에도 빨치산이 활동하였다. 소한정 역시 이때 정자가 불타고 원형이 많이 파괴되고 훼손되었다.
 
 
그 후에도 최근까지 끊임없는 산사태, 태풍과 홍수로 인한 자연재해가 발생하여 우규동 별서인 소한정이 피해를 입었다. 인간에 의한 인위적인 피해도 발생하였다. 사전 환경영향평가를 부실하게 하여 소한정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지 않고 무신경하게 어곡제2산단 조성공사를 강행하였다. 산단조성을 위한 발파작업 때문에 소한정 경내의 바위가 굴러떨어지고 축대가 붕괴되는 피해가 있었다고 한다. 우종신 전 양산농협 상무는 원상복구를 위해 시공 건설사에 피해 배상을 요청했다고 한다.
 
 
건설업자들은 소한정 주변에 살고 있는 마을주민들을 적당히 설득하여 산단조성 공사를 하고 있다. 1992년 10월 21일 경남도 문화재자료 제189호로 지정된 소한정은 도로를 사이에 두고 어곡제2산단과 연결된 부지에 자리잡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문화재에 대한 사전 보호 조치를 거의 취하지 않았다. 요즘도 암반 발파작업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소한정 보호대책이 시급한 실정이다.
 
 
도둑이 조경석을 훔쳐가는 일도 있었다. 또한 소한정에 있던 바위에 새겨진 장기판은 도둑맞았다고 한다. 그 밖에도 받침대를 만들어 올려놓았던 멋진 수석도 누가 훔쳐갔다고 한다. 인간에 의한 피해가 속출하고 있어 문제다. 양산시에서 CCTV를 설치하여 더 이상의 소한정 훼손과 피해를 방지하는 대책이 강구되어야 하겠다.
 
 
조선시대 마지막 시기인 1910년 조성된 전통정원인 우규동 별서(면적 11,820㎡)는 단양 우씨 한 문중의 유산을 떠나 양산의 자랑이자 경남도의 문화재자료 제189호( (1992년 10월 21일 지정)로 소중하게 보호하고 관리해나가야 한다. 더 나아가 우리나라의 소중한 문화유산이기에 학술조사 후 원형복원을 추진해야 한다. 그 이유는 조경, 역사, 관광 전공의 교수와 학자들이 수시로 방문하여 연구하는 귀중한 역사자원이기 때문이다.

세심당 연못에...
 
그리고 소한정에 화장실이 없어 답사객이 불편한 점이 있으며, 용변을 보는 사례도 있어 관리가 힘들다고 한다. 음료수, 막걸리 등을 마시고, 과자를 먹고 쓰레기 그대로 버린 것도 눈에 띄었다. 관광객 자신이 가져온 쓰레기는 되가져가는 관광객의 품위가 요구된다.
 
 
한편 10월 2일 밤에 지나간 태풍 미탁으로 상류에서 떠내려온 스틸로폼을 포함한 쓰레기가 별서 주변에 널려 있어 청소가 필요하다. 테풍 때 쏟아진 비로 입구 출입 계단 주변의 흙이 움푹 파여 있어 보수가 시급하다. 냇가에 인접한 곳에 있던 커다란 배롱나무 한 그루도 계곡의 급류를 이기지 못하고 쓰러져 있었다. 수령이 오래된 나무를 이식해 살리는 방안을 강구해야 하겠다.
 
 
 
필자 역시 문화, 관광 전공자로서 깊은 관심을 기울여 수시로 답사를 하며 연구를 하고 있다. 우규동 별서를 널리 알리기 위해 양산스마트뉴스, 양산신문에 칼럼도 쓰고, 양산숲길보전회 밴드에도 올려 양산시민들에게 관심을 유발하고 있다. 또한 필자 심상도는 증손자인 우종신 전 양산농협 상무와 긴밀한 대화와 소통을 하고 있다. 우종신 전 상무는 필자에게 여러 가지 학술자료를 제공해주었는데,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바이다.
 
 
10월 9일 신선들이 바둑두는 모습을 재현하는데 주인공으로 나서 협조를 해준 영남삿갓 이시일 시인, 한국 최고의 영수증, 전단지, 각종 자료 수집가 성봉경 씨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날씨가 맑고 약간 더워서 한복을 차려입고 땀을 흘리며 바둑을 두느라 두 분은 고생을 하였다. 높은 곳에 위치한 칠성각에 가서 기도를 하며 우규동 별서의 복원을 빌었고, 우규동 별서를 방문하고 돌아가는 손님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는 장면을 재현하느라 애쓴 두 분의 노력은 우규동 별서를 보호하고 보전하는데 기여하고 일조할 것으로 굳게 믿는다.

어곡제2산업단지 조성 현장
 
동남문화관광연구소 소장, 양산숲길보전회 회장, 관광경영학 박사 심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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