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8 (목)
동남문화관광연구소 소장 관광경영학 박사 심 상 도
자장율사사 당나라 유학 때 문수보살이 나타나 그대의 나라 남쪽 축서산(鷲栖山 : 영축산의 옛이름) 기슭에 독룡(毒龍)이 거처하는 신지(神池)가 있는데, 거기에 사는 용들이 독해(毒害)를 품어서 비바람을 일으켜 곡식을 상하게 하고 백성들을 괴롭히고 있다.
그러니 그대가 그 용이 사는 연못에 금강계단을 설치하고 이 불사리와 가사를 봉안하면 삼재(三災 : 물, 바람, 불의 재앙)를 면하게 되어 만대에 이르도록 멸하지 않고 불법이 오랫동안 머물러 천룡(天龍)이 그곳을 옹호하게 되리라.”하였다.
자장율사는 신라로 귀국하여 나쁜 용들이 산다는 못에 이르러 용들에게 설법을 하여 제도하고 못을 메워 그 위에 금강계단을 쌓았다. 통도사 산문에서 무풍한송길을 따라 조금만 올라가면 구룡지에 살던 용이 자장율사의 법력을 피해 하늘로 도망쳐 날아가다가 떨어져 죽으면서 흘린 피가 묻은 바위가 있다. 실제로 보면 하얀 바탕의 바위에 검은색이 섞여 있다. 이 바위를 용피바위 또는 용혈암이라고 한다.
자장율사에게 항복한 독룡은 모두 아홉 마리였는데, 그 가운데서 다섯 마리는 상북면 외석리에 있는 오룡골로, 세 마리는 삼동곡(三洞谷)으로 갔다. 오직 한 마리의 눈먼 용만은 굳이 그곳에 남아 터를 지키겠다고 굳게 맹세하였으므로 스님은 그 용의 청을 들어 연못 한 귀퉁이를 메우지 않고 남겨 머물도록 했다고 한다. 그곳이 지금의 구룡지인데 불과 네댓 평의 넓이에 지나지 않으며 깊이 또한 한 길도 채 안 되는 조그마한 타원형의 연못이지만 아무리 심한 가뭄이 와도 전혀 수량이 줄어들지 않는다.
통도사 창건설화와 관련된 독룡은 그 당시 양산에서 고유종교를 믿는 집단이라고 볼 수 있다. 자장율사가 설법을 하여 제도하고 한 마리의 눈먼 용에게 구룡지에 남아 불법을 수호하라고 한 것은 일종의 타협책이다. 끝까지 저항하는 나머지 용들과는 도술 대결을 벌여 몰아내었다. 이것은 수도자로서의 법력, 또는 선덕여왕의 비호 아래 군사력을 이용하여 우리 고유의 토속 신앙인들을 설득 내지는 무력으로 제압한 것으로 해석 가능하다.
통도사 산문과 가까운 곳에 땅바우공원이 있다. 여기에서 자장율사와 양산의 토속 종교인들이 대담을 통해 협상을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땅바우공원은 현재 오른쪽에 W모텔, 왼쪽에 허브모텔이 있어 숙박업소로 포위되어 있는 형국이다. 안내판에 설명하는 땅바우공원의 유래가 종교와 연관되고 있다. 기묘한 바위와 용처럼 꿈틀거리는 소나무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아름답고 신비한 곳이다.
땅바우란 불쑥 솟은 바위를 말하며 이 지역은 예부터 기묘하게 생긴 큰 바위들과 소나무가 어우러져 있어 땅바우로 불리었다. 바위에는 선사시대 종교적 흔적으로 보이는 바위 구멍이 여러 곳 남아 있으며, 바위 언덕에는 과거 비석들이 꽂혀있던 자리를 발견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바위구멍은 선돌이나 고인돌 등 특정한 바위에 집중적으로 새겨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곳은 바위 꼭대기나 바닥 등 위치와 방향을 고려하지 않고 무질서하게 흩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암반 전체를 종교적 대상으로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공원 조성 당시 ‘삼방공원’이라 불리었으나 2006년 지역 특성에 맞는 공원 이름을 지정해달라는 주민들의 의견에 따라 ‘땅바우공원’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고 한다. 바위의 구멍은 흔히 성혈로 아들을 낳게 해달라는 주술적 의미에서 돌을 갈아 만들었다. 홈구멍〔性穴, cup-mark〕은 바위그림의 한 종류로서 돌의 표면에 파여져 있는 구멍을 말한다. 주로 고인돌(支石墓)의 덮개돌(上石)이나 자연암반에 새겨진다.
형태적 차이는 있지만 민속에서는 ‘알구멍’, ‘알바위’, ‘알터’, ‘알미’, ‘알뫼’ 등으로도 불린다. 땅바우공원은 종교적으로 의미깊고 신성한 공간이었음을 알 수 있다. 자장율사와 양산의 토속 종교 대표가 모여서 대화를 통해 설득과 회유책을 주고받으며 협상을 하기에는 알맞은 공간이다.
한 나라에 새로운 종교가 전파될 때 거부감이 강하므로 여러 가지 마찰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양산의 주민들이 외래종교를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고 기존의 토속 신앙을 고수하려고 할 때 자장율사는 구룡지의 전설처럼 강온책을 구사했을 것이다.
신라시대 고운 최치원 선생은 난랑비(鸞郞碑) 서문(序文)에서 풍류교를 언급하였다. ‘우리 나라에 현묘한 도가 있으니 이를 풍류라 한다. 풍류교를 만든 근원은 신사역사에 상세히 실려 있거니와 우리 풍류교에 접목되어 각각 다른 종파로 분리되어간 유교, 도교, 불교의 삼교의 핵심이 다 이 속에 포함되어 있다. 집으로 들어오면 부모에게 효도하고 밖으로 나가면 나라에 충성하는 것은 노사구(공자) 유교의 취지요, 매사에 무위로 대하고 말 없는 가르침을 행함은 노자의 도교이며, 악한 일들을 하지 말고 오로지 착한 일을 받들어 실행함은 석가모니의 불교로 변해갔다.’
최치원 선생이 밝힌 바와 같이 유불선의 모체종교가 우리나라에 있었고, 이 모체종교를 신교, 풍류도, 신선도 등의 이름으로 불렀다. 신교를 통해 심신을 수련한 지도자가 각 시대별로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배달국시대의 제세핵랑군(濟世核郞軍) 3천 명이 그 뿌리라 할 수 있고, 고조선 시대의 삼랑, 부여의 국자랑, 고구려의 조의선인, 신라의 화랑이 있었다. 이들은 삼신상제님을 받들고, 수도를 하면서, 나라와 백성을 위해서 봉사를 하였다.
신라시대 ‘임신서기석(壬申誓記石 : 보물 제1411호)’은 30㎝ 길이의 돌에 화랑의 결의가 새겨진 비석이다. 거기 쓰인 일흔네 자의 글씨를 풀어쓰면 다음과 같다.
“임신년 6월 16일 우리 둘은 더불어 맹세하며 여기에 기록한다. 앞으로 3년 이후에도 충성스런 도리를 가슴에 새겨 이를 지키며 변하지 않을 것을 약속한다. 만약 우리 가운데 하나가 이 다짐을 지키지 않는다면 하늘로부터 큰 벌을 받을 것이다. 나라가 어지럽고 세상이 크게 불안해진다고 해도 이 맹세는 지켜질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또한 지난날 약속했듯 다양한 책을 읽어 학업에도 정진할 것임을 다짐한다.”
절친한 두 명의 화랑이 자신들의 맹세와 다짐을 뜨거운 불과 세월의 풍화작용으로도 온전히 없앨 수 없는 돌에 명백하게 새겨 스스로를 다잡고자 만든 것이 ‘임신서기석’이다. 역사학자 최광식은 “화랑도의 지도 이념은 풍류도”라고 주장했다.
소백산과 연결되는 선달산(仙達山)이라는 산이 있다. 선달이란 이름은 선도의 무리라는 의미로 배달겨레의 그 배달이 바로 선달이다. 선달산 남쪽에 부석사가 있다. 부석사 창건 설화에서는 선달과 관련된 일화가 전해진다. 의상이 부석사 터를 정하고자 했는데 사교의 무리 500여 명이 방해했다는 것이다. 그들이 다름 아닌 선도의 집단으로 우리의 토속신앙을 믿는 원주민들이다.
의상대사가 배를 타고 당나라로 유학갔을 때 양주의 한 집에 머물렀는데 그 집 딸 선묘(善妙)가 의상을 사모하였다. 의상대사가 유학을 마치고 귀국길에 오르자 그 소식을 들은 선묘낭자가 의상대사를 위해 준비했던 법복과 그 밖의 물건들을 함에 가득 넣었다. 이윽고 바닷가에 도착했을 때 의상의 배는 이미 멀리 떠나고 있었다. 선묘 낭자는 바다에 몸을 던져 용으로 변하였다. 선묘가 배를 수호하여 인도하니 의상이 탄 배는 무사히 신라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의상대사는 사찰을 창건하라는 왕명을 받고 봉황산에 갔는데 그곳에 먼저 자리 잡은 토속 종교를 믿는 토박이 주민들 때문에 뜻을 이룰 수 없었다. 이때 선묘용(善妙龍)이 나타나 큰 바위를 공중으로 세 차례나 들어 올렸다 놓는 신비한 힘을 보여주었다. 토속신앙을 믿던 주민들은 신비로운 이적을 목격한 후 더이상 사찰 짓는 것을 방해하지 않게 되었다. 부석사(浮石寺는) 뜬 바위(浮石) 절이라는 의미다.
각 나라마다 고유의 종교가 있는데, 우리나라의 고유한 토속신앙은 풍류교였다. 현재 무속인들에 의해 태백산, 마니산 등에서 전통이 계승되고 있다. 옛날부터 우리나라에는 유불선을 합한 선도 사상, 용과 산신을 숭배하는 토속종교가 있었다. 통도사와 부석사의 창건 설화에서 우리의 토속신앙과 외래 종교인 불교의 갈등을 볼 수 있다. 불교계에서는 우리의 전통 신앙을 일부 받아들인 산신각, 칠성각, 가람각이 있다. 통도사 가람각은 토지신을 모시는 도교와 연관된다. 불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와 토속신앙과의 갈등을 거쳐 일부는 수용하는 형태를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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