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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도 박사의"양산숲길보전회 천성산 원효대사 유적지 답사 제3탄 마지막"스토리텔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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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양산뉴스

심상도 박사의"양산숲길보전회 천성산 원효대사 유적지 답사 제3탄 마지막"스토리텔링

9월 29일 천성산 답사는 날씨가 좋아서 구름이 많았지만 안개가 피어오르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일요일을 멎이하여 많은 등산객이 몰렸는데, 아는 사람도 만났다.

● 원효대사 천성산에 98암자 창건

양산의 한가운데에 자리잡은 천성산은 신라시대의 고승 원효대사, 불교에 관련된 지명과 유적들이 많이 남아있어 스토리텔링의 보고라 할 수 있다. 경주시는 무수한 절터와 불상, 탑이 남아 있는 남산을 불국토라 부른다.
 
 
성봉경 수집가, 내원사 지율 스님이 쌓은 돌탑
 
 
 
 
 
 
천성산의 불교문화 유적과 사찰, 암자, 폐사지 등은 경주의 남산에 버금간다. 이러한 찬란한 불교문화 유산을 잘 가꾸고 후세에 온전하게 전하는 것은 전적으로 양산시민의 책임이다.

원효대사는 중국에서 건너온 천 명의 제자를 수용하고 불법을 전하기 위하여 천성산에 89암자를 지었다고 한다. 현재 천성산에는 원효대사와 관련된 대표적인 사찰인 내원사를 필두로 홍룡사, 원효암, 미타암 등의 천년 고찰이 있다.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활동하던 시절 불교는 왕실에서 공인한 종교로 전성기를 맞았다. 불교가 국교로서 인정받는 상황은 고려시대까지 지속되었다.

유교가 국교로 통치이념의 기본이 된 조선시대의 불교계는 암흑기였다. 불교는 탄압받았고, 승려들은 천민으로 취급받기도 하였다. 신라와 고려시대에 걸쳐 각종 특혜를 받던 불교계와 사찰은 조선시대에는 과중한 부역을 하였으며, 스님들은 외적을 막기위하여 산중에 있는 성을 방비하거나, 왕릉을 수호하는 역할도 하였다.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던 사고도 사찰에서 지켰으니 스님들이 얼마나 고달팠을지 짐작이 간다.

품질 좋은 한지를 생산하는 힘든 노역을 하기도 하였다. 또한 차를 생산하여 관청에 공납하는 일도 고통스런 부역이었다. 숭유억불 정책으로 탄압을 받던 조선시대의 불교계는 존경과 대우보다는 일방적인 책임과 의무가 많았다. 천성산에 있던 암자들도 과중한 부역을 견디지 못한 승려들이 하나 둘 떠나면서 많은 암자들이 폐사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천성산에 89암자가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은 현재 남아 있는 사찰과 암자, 폐사지를 보면 결코 과장된 숫자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천성산 곳곳에 남아있는 폐사지를 답사하면서 느낀 점은 불교문화가 융성했던 신라시대의 찬란한 문화유산이 땅속에 방치되고 있다는 것이다. 폐사지로 추정되는 곳은 옛날 기와조각이나 옹기 파편 등이 남아 있다.
 
 
 
 
 
 
 
운무에 뒤덮힌 화엄벌
 
화엄벌을 배경으로
 
 
 
 
앞으로 양산시의 과제는 89암자가 있었던 폐사지를 발굴 조사하여 정확한 역사의 기록을 남기는 것이다. 폐사지는 원효대사가 수도하고 천 명의 제자를 성불시킨 문화 유적지라 할 수 있다. 화엄벌에서 화엄경을 강독하던 곳은 천년이 넘었지만 벌판이 그대로 보전되고 있어 신비스럽게 느껴진다. 이제는 귀중한 고산습지로서 화엄늪이라 하여 낙동강환경유역청과 양산시에서 등산객의 출입을 금하고 적극적인 보호를 하고 있다.

● 내원사 적멸굴

적멸(寂滅)은 두 가지 뜻으로 자연히 없어져 버림, 불교적 용어에서 번뇌의 경지를 벗어나 생사의 괴로움을 끊음, 죽음, 입적(入寂), 열반(涅槃) 등을 의미하고 있다. 적멸궁은 불상을 모시지 않고 법당만 있는 불전이고, 적멸보궁(寂滅寶宮)은 석가모니 부처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모신 법당을 말한다.

천성산에 있는 적멸굴은 번뇌의 경지를 벗어나는 굴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원효대사가 수도하여 해탈한 곳이므로 역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유적지라 할 수 있다. 현재 천성산에서 내원사가 `옛원효대사 수도처 입구`라는 표지판을 유일하게 붙인 곳이다.

적멸굴은 동학을 창시한 수운 최제우 선생이 기도를 하여 깨달음을 얻은 곳이기도 하다. 기도발 잘 받는 곳으로 이름나서 무속인들이 찾아와 기도를 하고, 선거철이 되면 출마자들이 방문하여 간절히 기도하기도 한다. 바위가 붉은 빛을 띠고 있어 적미굴이라고 한다.

최근 적멸굴은 새로운 주목을 받고 있다. 원효대사가 양산의 천성산 적멸굴에서 득도를 했다고 UBC 울산방송은 2015년 2월 뉴스 리포트를 통해 밝혔다. 아울러 의상대사도 적멸굴에서 수도를 하고 양산시 원동면 가야진을 통해 배를 타고 남해 연안을 돌아 서해바다를 건너 당나라 유학을 떠났다는 새로운 주장을 제기했다.

지금의 경기도 화성, 즉 당항성에서 뱃길을 통해 당나라 유학을 시도했다는 학계의 정설과 상반되는 주장이다. 원효대사의 해골 물 이야기도 전설일 뿐이며, 686년 원효가 입적한 후 약 300년이 지난 후인 998년 송나라 사람 찬녕이 쓴 『송고승전』의 `당주계` 기록을 토대로 유추하는 것일 뿐이라고 하였다.

송나라의 입장에서 해동국을 속국으로 여기고 우리의 포구를 당주계라고 쓴 것에 불과한 것이다. 따라서 당주계가 어디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고 한다.

● 원효대사의 척판구중

원효대사는 도를 통한 고승으로 신라에서 있으면서 중국에서 일어날 미리 예측하는 신통력을 지니고 있었다. 기장의 척판암에서 참선을 하던 원효대사는 천안통(天眼通 :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는 능력)이라는 신통력을 지녔다.

당나라의 종남산에 산사태가 나 태화사 1천 명의 승려와 불자가 매몰되는 위급한 사태를 미리 알고 인명을 구하기 위하여 신속한 대처를 하였다.

조상혁 전속 사진가가 찍은 멋진 작품 사진
 
 
 
 
 
 
 
 
 
 
 
 
원효대사는 판자에 `해동원효 척판구중(海東元曉 擲板救衆)`이라 써 태화사로 날려 보냈다. 금빛 나는 판자가 절 주변의 공중을 떠돌았다. 이를 본 스님이 신기하게 여겨 소리치자 이를 보려고 승려와 대중들이 절 밖으로 나오는 순간 산사태가 절을 덮쳤다. 목숨을 구한 승려들은 판자의 글을 읽어보고 자신들의 생명을 구해준 원효대사의 제자가 되기 위해 신라의 척판암으로 왔다.

척판암은 원효가 판자를 날려 사람을 구했다는 설화가 담긴 암자로 신라 문무왕 13년(673년) 원효대사가 척판암(擲板庵)과 함께 장안사를 창건했다고 전한다. `척판(擲板)은 판자를 던지다`는 의미이다.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사에서 북쪽으로 1.3㎞ 떨어진 곳에 척판암이 위치하는데 임도가 개설되어 있으나 나무가 우거진 등산로를 따라 호젓한 산길로 올라가면 나온다. 장안사는 큰 절로 많은 불자가 참배하고 있으나 척판암은 원효대사가 천 명의 사람 목숨을 구한 유서 깊은 곳이지만 현재는 불자가 별로 찾지 않는 작고 허름한 암자로 남아 있다.

● 원효대사와 화엄벌

원효대사 덕분에 목숨을 구하게 된 천명의 중국 승려와 불자들이 생명의 은인인 원효대사를 찾아와 설법을 청하자 이들을 수용하기 위해 제자들을 이끌고 천성산 내원사가 있는 곳으로 왔다.

이곳에 이르자 천성산의 산신령이 나타나 이들을 인도하여 현재의 내원사 입구 매표소가 있는 곳에 이르러 이곳은 능히 천명의 제자를 받아들일 수 있는 곳이라 일러주고 홀연히 사라졌다. 내원사의 산신각이 절 안이 아니고, 절 밖인 현재의 자리에 있게 된 연유라고 한다.

원효대사는 천성산에 89개의 암자를 건립하여 천 명의 제자를 분산하여 수용하였다. 당시에는 천 명이라는 많은 인원을 한꺼번에 모아놓고 설법을 할 곳이 없었다.
 
 
 
 
 
 
 
제자들을 내원사 뒤편 천성산의 넓은 벌판인 화엄벌로 데려가 야외불단(野外佛壇)을 세우고 법좌석(法座席)을 마련하여 불교 최고의 경전인 화엄경(華嚴經)을 설법하였다. 천 명의 승려를 화엄벌에 소집하여 화엄경을 강설할 때 짚북재에 짚으로 만든 북을 매달아 놓고 쳐서 알렸다고 한다.

천 명의 제자에게 화엄경을 강론할 때 식량이 부족하여 상북면 대석리에 거부(巨富)가 있다는 소리를 듣고 스님이 탁발을 갔다. 하인이 발우에 쌀 한 되를 부으니 반의반도 못 찼다. 하인이 이 사실을 주인에게 고하자 주인은 도사임을 깨닫고 천 명의 제자들 식량을 해결해주었다고 한다.

원효대사의 제자가 탁발 갔다 오는 길에 칡넝쿨에 걸려 양식을 다 쏟고 빈손으로 돌아왔다. 원효대사가 흰 종이 한 장을 그 자리에 버리고 오게 하니 이후 천성산에 칡넝쿨이 잘 자라지 않았다. 화엄벌에 풀이 자라지 않은 곳은 원효대사가 화엄경 강독 때 책을 놓은 자리이다.

답사를 마친 후 점심식사는 유명한 맛집인 새동네 생고기 구이에서 하였다. 전화 055-387-5292, 주소는 양산시 양주3길 45-17
경상남도 양산시 양주3길 45-17 새동네생고기구이

새동네생오리생삼겹

경상남도 양산시 양주3길 45-17 새동네생고기구이

 
 
 
 
 
 
 
 
 
배묘선 대표가 직접 농사지은 신선한 야채를 재공한다.
 
 
● 협찬

* 행사 참여 인원(20명)×10.000=20만원
* 월례회 식대 이월금 - 1만원

*심상도 회장 - 10만원
*조상혁 회원 - 5만원

* 행사 점심 식대비(새동네 오리구이)ㅡ25만원

☆수입(360,000) - 지출(250,000) = 잔액 110,000만원

<찬조 물품>
이기천 이사 - 과자 1박스
이다겸 - 생수 2박스
김미향님 - 부침개ㆍ토종밤
박점자 - 볶은 김치
김희숙(사무국장님) - 찹쌀모찌
서옥금님 - 부침개
이대섭 대표 - 물금 울금 막걸리 1box
허수 - 착한 삼촌네 청과 야채 : 과일 머루포도 5박스, 바나나 1박스

협찬 찬조해 주신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리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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