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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도 문화박사의 화요칼럼 "원효대사가 창건한 천성산 원효암의 매력"

기사입력 2019.09.10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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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문화관광연구소 소장 관광경영학 박사 심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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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사찰 제76호인 원효암은 양산시 상북면 대석리 산 16번지 천성산에 위치한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본사 통도사 말사이다. 천성산(해발 922m) 정상 아래 750m 지점에 자리 잡은 원효암은 646년(신라 선덕여왕 15년) 원효대사(617~686년)가 창건한 유서 깊은 천년 고찰이다. 해발 730m의 절까지 차로 갈 수 있는 것이 원효암 매력 중의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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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년(1905년)에 효은(曉隱)선사가 중창하였고, 경봉선사의 원력으로 1976년 범종각과 범종을, 1980년에는 법당을 새로 지었지만 인법당(人法堂) 형태여서 협소하고 불편하였다. 인법당은 인법당(因法堂)이라고도 쓴다. 큰 법당이 없는 절에서 승려가 머무르는 곳에 불상을 함께 봉안한 전각, 혹은 승방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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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보조와 불자들의 마음을 모아 2018년 5월에 범철 스님이 현재 모습의 대웅전으로 개축 불사를 하였다. 1648년(인조 26년)에 조성한 경남도 유형문화재 제430호 ‘석조약사여래좌상’, 세존응화 1905년(世尊應化 2933)년에 조성한 경남도 유형문화재 제431호 ‘마애아미타삼존불입상’이 있다. 문화재로 지정은 되지 않았으나 독성각에 모셔진 작은 석조불상도 조선시대에 조성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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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애아미타삼존불입상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31호로 사찰 법당 옆 절벽에 위치하고 있다. 마애아미타삼존불입상은 아미타여래를 중심으로 좌우에 관음보살상과 대세지보살상이 배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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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미타삼존불은 얇게 조각되어 평면적이며 회화적인 성격이 강화다. 본존불인 아미타여래는 입상으로 상반신에 비해 하반신이 훨씬 길어 보여 전체적으로 안정감을 주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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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존불의 좌우에는 본존불을 향해 합장인을 하고 원형두광을 갖추고 있는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좌우에 서 있다. 좌우 보살상들은 좌우대칭으로 화려한 보관에 긴 머리가 어깨를 따라 허리까지 흘러내린 유려한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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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존불의 상단에 나무아미타불이라는 명문과 대세지보살 우측에 새겨진 세존 용화 2933년이라는 명문을 통해 아미타불이라는 본존의 존명과 1906년이라는 제작시기를 알 수 있다. 비록 조성시기가 떨어지기는 하지만 한 폭의 불화를 연상시킬 정도로 정교하고 섬세한 조각수법을 보인다는 점에서 중요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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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삼존의 아래에는 '강응수(姜膺秀)', 삼존이 새겨진 암석의 향좌측 측면 암석에는 향좌부터 '이우영(李瑀榮)', '안규행(安珪行)', '우창옥(郵創玉)', '정기남(鄭基南)' 등 발원자 이름이 음각되어 있다.

 

천광약사여래불은 원효암 동쪽 150m에 있다. 1991년 7월 20일 저녁 8시경 천둥 번개를 동반한 벼락에 의해 조성되었다. 그때 당시 날씨는 장마철이라 변덕이 심했고 그날도 예외는 아니었다. 갑자기 천성산 일대에 먹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바로 번개가 이곳저곳에서 치고 하늘에서는 천둥소리가 끝없이 들려왔다. 그러나 비는 내리지 않았다. 

 

그러한 상황이 약 두 시간 계속되던 중 사자봉에 불기둥이 떨어지면서 벼락이 내리쳤다. 바위에 불이 떨어지면서 깨진 돌들이 허공으로 치솟아 오른 것이 잠깐 보였다. 날이 밝아 사자봉을 바라보니 부처님 좌상이 나투신 것이다.

 

이 모든 사실이 교구 본사 통도사에 보고되어 방장 월하 대종사께서 직접 원효암을 방문하였다. 대종사께서 부처님의 명호는 동쪽에 나투셨으니 ‘동방만월세계약사유리광여불’로 명명하셨다. 

 

천광(天光)이라 함은 하늘에서 빛으로 조성되었다 하여 ‘천광 약사여래불(天光 藥師如來佛)’로 명호를 부르게 된 것이다. 그리고 약 3년 반이 되는 을해년 3월에 108계단 및 배례석 불사를 하였다. 즉 1995년 3월 8일 원효암 박정수 주지가 불사를 완공하였다.

 

원효암은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창건한 절로 화엄벌에서 원효대사가 중국에서 찾아온 천 명의 제자에게 화엄경을 강설하여 성불시킨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원효대사와 의상대사와 관련된 전설이 전해지는 현장인 의상대, 원효대가 있다. 법당 뒤에 서 있는 신장바위는 호법신장이 절을 수호하는 듯 솟아 있는 바위로 맨 꼭대기에 있는 바위를 투구바위라고 한다. 

 

원효대사가 원효암을 떠날 때 제자들에게 저 바위가 떨어지면 내가 열반한 것으로 알라고 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원효암 범종각은 천성산의 산세가 사자 모양을 하고 있어 종을 쳐 사자를 깨움으로써 국운이 번창하고 남북통일이 빨리 이루어진다고 하여 1976년 호국사자후종각을 지었다고 한다. 원효암에서 맑은 날에 내려다보면 양산시내, 부산의 광안대교, 멀리 일본 대마도까지 보이는 명당자리에 자리 잡고 있다. 원효암 주지실은 양지바른 곳으로 바로 앞에 큰 바위도 있다. 원효암 담장 밑에 바위로 된 미륵불상이 있는데, 대부분의 관광객은 모르고 지나친다.

 

원효암에는 천성산 원효암 헌산유공기(千聖山 元曉庵 獻山有功記)가 있다. 기록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급고독 장자가 기다태자의 동산을 금으로 덮어 그곳에 절을 지어 부처님께 보시하였다고 들었다. 구하스님은 박민순 씨가 산과 나무를 사서 원효암에 보시한 것을 급고독 장자의 부처님에 대한 보시에 비유하면서 천성산 원효암 헌산유공기(千聖山 元曉庵 獻山有功記)를 지어서 나무 현판에 새겨놓았다.

 

급고독장자(給孤獨長者)는 중인도(中印度) 교살라국(橋薩羅國) 사위성(舍衛城)의 부유한 상인 수달다(須達多)의 별칭이다. 그는 자비와 선을 베풀기를 좋아해서 종종 외롭고 쓸쓸한 이들에게 먹을 것을 베풀어주었기 때문에 이런 별칭을 얻었다. 그는 왕사성(王舍城)에서 석가여래의 설법을 듣고 크게 감동하여 석가여래를 자기 나라로 초청했다. 그리고 태자 기다(祇多)의 정원을 사서 기원정사(祇園精舍)를 세워 석가여래에게 바치며 설법하는 장소로 쓰게 해주었다.

 

장자의 일화는 다음과 같다. `옛날에 급고독 장자가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감동하였다. 자신처럼 많은 사람들이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삶의 이치를 깨닫게 하기 위해 절을 지어 부처님께 바치려고 하였다. 장소를 물색하던 차에 마침 기다태자의 동산이 적당하다고 여긴 장자는 태자에게 동산을 팔라고 하였다.

 

그러나 아무 것도 부러울 것이 없는 태자가 동산을 팔 리가 만무하였다. 장자가 너무나 간청하기에 팔지 않을 요량으로 그렇다면 동산을 금으로 덮으라고 하였다. 장자는 자신의 창고를 열어 동산을 금으로 덮은 뒤 태자에게 이렇게 덮었으니 자신에게 팔라고 간청했다. 태자도 그의 자초지종을 들은 뒤 감동하여 동산의 나무를 보시하였다.`

 

오늘날 박민순 씨가 산판과 땔감을 매입해서 이 암자에 공양 올렸다. 고금이 비록 다르지만 은혜를 베풀어 보시한 공덕은 매한가지이다. 왜냐하면 이 암자는 신라국의 원효국사께서 주석한 곳이나 유적(암자)이 퇴패(頹敗)해 천여 년이나 지나왔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효은선사가 거년 을사년(1905년)에 암자의 여러 칸을 나누어 중건하였다.

 

그러나 산판 측량을 소홀히 해서 그 후에 사찰의 터만 근근이 지켜왔다. 그 외 나머지의 것도 타인의 소유가 되어 버렸는데, 사찰에 머무는 스님들이 쓸 나무조차도 산주의 소유였다. 산주가 팔 때는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에서 절 주위를 장엄(풍치림)한 나무 한 그루까지 모조리 다 팔아버리는데도 산주의 행위를 어찌할 수가 없었다.

 

그때 주지 보월선사가 근심이 막심하고 분개를 금하지 못했는데, 상북면 대석리에 사는 박민순 씨가 오로지 부처님 도량에 나무 한 그루의 풍치도 없는 것을 안타까워하고 한결같은 주지 스님의 지성과 단혈(일편단심)에 감동하여 사찰 근처 산판 2정 8반과 수목 수백 그루를 매입해서 이 암자에 영구 보사(補寺)토록 하였다.

 

이 분의 부처님 도량을 외호한 방편지책이 참으로 장하고 훌륭하니 포금시원의 옛이야기와 조금도 다르지 않기에 내(구하스님) 기록해서 오는 이들에게 알리고자 하는 바이다(1935년).

 

천성산 원효암 헌산유공기(千聖山 元曉庵 獻山有功記)의 존재를 알게 된 연유는 양산경찰서 장석원 정보관이 필자에게 구하 스님의 현판을 디카로 찍어서 보내주었기 때문이었다. 몇 년 전 자료에 대한 궁금증과 호기심에서 새해 천성산 일출 행사를 마치고 장석원 정보관의 소개로 천성산숲길보존회(현재 양산숲길보전회) 회원들과 함께 원효암 범철 주지 스님을 친견하게 되었다. 

 

범철 스님은 통도사 누룽지로 아침 공양을 마련해주고, 귀한 차도 내어주었다. 차를 마시고 주지실에 올라가 `천성산 원효암 헌산유공기` 현판 실물을 구경하고 사진을 찍었다. 장석원 정보관과 범철 스님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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